
The Zombie Song
조로 좀비
잉디 @Sanji_Ingdi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당해버린 건. 등을 밀치는 힘에 겨우 균형을 잡았을 땐, 이미 시퍼렇게 타오르던 눈동자가 제 빛을 잃고 난 후였다. 피에 젖어 암녹색으로 물들었던 짧은 머리카락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영롱하게 짤랑거리던 세 개의 금빛 귀걸이는 진흙바닥을 굴렀다. 그의 강인한 목덜미를 물어뜯는 괴물, 그 광경은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도, 괴물들의 목을 가르던 세 자루의 검도 필요 없다. 단 한 번의 부상. 그게 조로를 암흑으로 인도했고, 상디에게는 절망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살아남은 생명은 없어, 조로. 상디는 울부짖으며 조로의 목덜미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괴물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퍽, 하고 하늘로 비상하는 썩은 뇌수가 역겹게도, 조로의 더러운 티 위를 새로이 적셨다.
나 따위 것은 버리면 됐잖아.
조로의 목덜미에서부터 시작된 검은 줄기가 그의 탄탄한 몸을 빠르게 덮어갔다. 아, 이렇게. 상디는 더듬더듬 조로의 몸을 잡아 꽈악 끌어안았다. 먼저적의 습관으로 발차기를 고집하는 상디와 세 자루의 검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조로. 누가 보아도 뻔한 이야기였다. 괴물들의 틈 속에서 썩어갈 인간이 누구인지는. 상디는 늘 먼저 그의 곁을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말했고, 조로는 거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끄윽...”
숨이 끊어진 지는 오랜데, 그의 단련된 몸은 바르르 떨리며 버거운 경련을 일으켰다. 있는 힘껏 끌어안은 상디의 팔이 없었더라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괴하게 몸을 꺾으며 차츰차츰 괴물로 변해갔을 터였다. 허옇게 뒤집어 깐 눈동자에 실핏줄이 터져 툭툭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변할 건 나였어, 네가 아니라. 상디는 쇄골의 뼈가 드러난 조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같이 그 고통을 삼켰다.
“죽음은 늘 나와 함께 하는 거였어. 네 녀석은 지옥에서도 바득바득 기어 나올 놈이었고.”
쓸모없어 아비에게 죽음으로 버려진 아이, 폭풍 속에 표류하며 죽음까지 내몰렸던 아이. 그게 바로 상디였고, 모두가 사라진 이 미친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다. 원하는 건 단지, 조로의 곁에서 지내다 그보다 한 발 앞서 괴물이 되는 것. 끝은 정해져 있었고, 그렇다면 상디는 조로의 검에 베이길 원했다.
상디의 시나리오 속에 조로가 먼저 스러져 가는 것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조로와 티격 대면서도, 조로는 늘 굳건하게 서서 그의 마지막을 베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차가운 검날로.상디는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라면, 조로의 끝을 바라보는 거라면.
“내가 챙겨주는 마지막 식사다, 마리모.”
상디는 잔떨림이 멎어가는 조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동안 도망 다니고, 싸우고, 죽이는 생활에 미쳐 식사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으니까. 조금 담배에 찌들고, 이미 죽음에 퐁당 적셔진 썩은 재료일지라도, 너라면 군말 없이 먹어줄 터이니. 맛있다, 맛없다 그런 말조차 없이. 요리사로서는 꽝일지도 몰랐다. 썩은 재료, 이렇다 할 양념도, 조리도 하지 않은 날 것의 음식. 하지만 상디는 그의 마지막 만찬은 반드시 이렇게 해주고 싶었다.
“눈을 떠, 저 좀비 떼처럼 역안의 붉은 눈을 한 채로.”
조로가 검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상디의 더러운 셔츠 앞자락이 붉게 물들었다. 아아, 거의 다 왔구나. 수많은 좀비들의 시작은 늘 이렇게 목구멍에서 마지막 생명을 토해냄에서 비롯됐다. 조로가 수없이 베어내고, 상디가 머리통을 깨부순 좀비들에게도 탄생이라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그들은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조로와 상디의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의 검과 발아래 그들의 죽음마저도 무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리고 먹는 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좀비들은 뇌를 좋아한다니, 뇌부터 너에게 주마.”
상디의 입가에서 대롱대던 담배가 잿가루로 변해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아아, 내 마지막 만찬도 끝났다. 상디는 활짝 웃었다. 조로의 붉은 역안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동시에.
거친 숨소리가 상디의 귓가를 간질이고, 품 안에 경직되어 있던 근육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 그렇게 뿌리치고 일어나. 내 목덜미를 물어뜯고, 차근차근 씹어 먹는 거다. 아직 위가 굳어있을 테니 썩은 재료로 얹히지 않도록 천천히. 상디는 자신의 생각에 헛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괴물이 되었다고, 조로 녀석이 어디로 갈까. 먹을 것에 한해선 루피만큼이나 둔한 녀석이니 자신을 한 입에 집어 삼켜도 멀쩡하기만 할 것을. 상디는 곧 덮쳐올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두 눈을 부릅떴다.
“크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몸이 활동을 시작했다. 끌어안은 팔의 힘이 무색하게 커다란 근육덩어리는 군데군데 썩은 몸을 한 채로 비틀비틀 벗어났다. 시리도록 푸른 벽안이 그 움직임을 쫒았다. 푸른 귀화가 타오르던 회색 눈동자는 붉은 역안으로 검은 핏물을 뚝뚝 흘려냈다. 아직 상디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초점이 맞지 않는 괴물의 눈이 허공을 유영했다.
이제 널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상디는 피식 웃었다. 동료들이 좀비가 되어버렸을 때도, 거침없이 그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을.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상디는 옷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이, 괴물. 이 쪽이다.”
시니컬하게 내뱉은 상디의 목소리에 허공을 배회하던 눈동자가 또렷하게 대상을 찾았다.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로 선 상디를 향해 돌아선 눈동자가 잠시간 침묵을 유지했다. 좀비가 되어서도 느려터진 녀석이로군. 상디는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 마지막엔 이미 변해버린 모습일 지라도 네 모습을 눈에 담는 것도 좋겠다.
자박-
괴물의 발이 한참 만에 첫걸음을 뗐다. 숨 막히는 침묵을 깨고, 자신의 첫 먹이를 향해. 평온하게 가라앉은 심장이 그 발소리처럼 느리고 묵직하게 쿵, 쿵, 귓가를 때렸다. 자, 와라. 내가 준비한 마지막 식사를 위해. 그 느릿한 움직임을 곧 먹혀 없어질 머릿속에 담았다. 구원받지 못할 지라도 네 안에서 영원히. 세기 말의 로맨티스트는 꾸밈없이 웃었다.
“...”
“...”
이해하지 못할 침묵, 그 답답한 시간이 이어졌다. 괴물답지 않게 바른 자세로 선 녀석이 먹이를 눈앞에 둔 채로 가만히 섰다. 이 구제불능의 길치는 이럴 때마저 제 길을 찾지 못하는 거냐. 너무나도 변한 것 없는 녀석의 모습에 울컥,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이...!”
상디가 입 밖으로 감정을 토해내는 것보다, 괴물이 행동하는 게 더 빨랐다. 인지하지도 못한 순간에, 썩어버린 커다란 덩치가 두터운 팔을 내뻗었다. 흠칫 놀라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피하지 않기 위해 몸을 단단하게 굳힌다. 퍽- 하는 소리가 귓가를 생생하게 울렸다.
“그어억-”
“...!”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썩지 않고 온전하게 남은 커다란 주먹에 붙잡힌 머리로, 발버둥 치는 좀비. 같은 괴물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무시한다. 그게 현실일 터인데, 어째서? 상디가 멍하니 제 어깨를 가로지른 팔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주먹 안에서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다.
“어, 째서?”
“그륵...”
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것 마냥, 녀석의, 조로의 움직임이 멎었다. 호흡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고요하게 멈춘 녀석은 간헐적인 가래 끓는 소리만을 남겼다. 머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게 빨랐다. 상디의 양뺨을 타고, 뜨거운 액체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 빌어먹을, 마리모가...!”
먹으라고 눈앞에 대령해 줘도 먹지도 못하고, 괴물이면 괴물답게 인간을 공격해야지. 왜 네 녀석은 끝까지 바보 같은가.
시야마저 뿌옇게 변하는 와중에 상디는 발끝으로 툭-하고 조로의 부츠 끝을 찼다. 움찔- 근육덩어리는 분명히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넌 진짜 구제불능이야.”
마치 재고의 가치조차 없다는 것처럼. 굳건하게 멈춰 선 그 육체에 상디는 스스럼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지막 담뱃불이 스러지고, 그걸로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상디는 품속에서 더듬더듬, 익숙한 케이스를 찾았다.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이 거추장스러움에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불을 밝혔다.
상디는 더러운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벅벅 닦아내며, 깊게 연기를 한 모금 머금었다. 거침없이 걸어가 바닥에 버려진 세 자루의 검을 들어올렸다. 이 녀석은 조로다. 상디는 얌전히 서서 자신의 행동을 응시하는 녀석의 손을 잡아 올렸다. 커다랗고 굳은살이 가득한, 차가운 손. 본디 뜨겁게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던 그 손은. 핏물이 덕지덕지 끼었지만, 썩지 않고 얌전히 늘어진다. 상디는 커다란 손바닥 위에 손수 검을 쥐어, 손가락까지 말아주었다.
“네 끝은 나의 다리로, 나의 끝은 너의 검으로.”
네 녀석은, 조로니까.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까드득- 검을 쥔 손에 힘줄이 불거졌다.
“옳지.”
상디는 씩 웃으며 조로의 옆을 스쳐, 괴물들의 시체를 밟아 넘었다. 자박, 자박, 묵직한 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어둑하고 음침한 하늘. 매캐한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름에도, 아무래도 좋았다.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인간과 괴물, 그 양 쪽에게서 버려져도. 우리 둘이면 충분하지. 그렇지 않냐?”
“...”
“무드 없는 새끼.”
상디는 푸하핫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패막이 되어서, 죽지 말자. 내 죽음은 너로 말미암을 것이고, 너의 무는 나로 말미암을 것이다. 뿌연 담배 연기가 핏빛 하늘을 하얀 빛으로 물들였다. 상디는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로, 무저갱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자, 함께 가보자.
“조로.”
